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이테 만 해전 (문단 편집) === 미군 === 미군은 레이테 만에 지상군을 상륙시켜서 필리핀을 공략하고자 하였다. 상륙에 앞서 미군은 9월부터 필리핀에 전개된 일본 제1항공함대(해군)와 제4항공군(육군)을, 10월 중순부터는 필리핀 인근 해역인 류큐 제도, [[대만 항공전|대만의 일본군 항공 세력을 차례로 공습]]하였다. 결과적으로 본격적인 해전을 앞둔 10월 18일 시점에서 일본군 항공세력은 700기 이상(미군 측 자료는 1,200기)을 손실하는 대타격을 입었다. 이로써 대만 및 일본 본토에서의 항공 지원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다음 과정으로 레이테 만에 맥아더 장군의 육군 6군을 상륙시켜 레이테 섬을 탈환하도록 한다.[* [[필리핀 탈환전]]을 총 지휘한 최고 사령관은 맥아더였으며, 이 문서에 나오는 레이테 만 해전의 컬러 지도들은 전부 다 맥아더의 보고서에 첨부된 것들이다.] 킨게이드 제독의 7함대는 여러 함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3개의 호위항공모함 전단(태피 1&4, 2, 3)은 레이테 만 동쪽과 남쪽 외곽에 전개하여 지상군에게 항공 지원을 제공하고, 6척의 구형 전함과 7척의 순양함, 그리고 10척이 조금 넘는 수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77.2 임무전대는 올덴도르프 제독의 지휘 하에 레이테 만에 직접 들어가서 포격 지원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홀시 제독의 3함대는 좀 더 외곽에 전개되어 일본 해군의 역습을 맞받아치는 함대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7함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고속전함들이 다수 배치된 마크 미처 제독의 38 임무부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또한, 7함대의 77.2 임무전대처럼 3함대 역시 주목할만한 하위 제대가 존재하였는데, [[존 매케인]] 1세 제독이 3척의 에식스급 항공모함인 와스프, 호넷, 행콕을 포함한 38.1 임무전대를 이끌었다. 이 전대는 38임무부대의 8척의 정규항공모함과 8척의 경항공모함 중 3대의 정규항모, 2척의 경항모가 소속되어 있고 함재기만 따지면 38임무부대 전체의 1/3이 넘는 강력한 전대였다. 이 전대는 울리시 해군기지에 재보급을 받으러 가다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 해군이 침입해 올 만한 경로는 남쪽의 수리가오 해협과 북쪽의 산 베르난디노 해협, 그리고 북쪽의 대양이었는데, 남쪽의 수리가오 해협에 어뢰정을 잔뜩 보내서 초계하도록 하고, 적이 발견되면 77.2 임무전대가 호위항공모함의 항공 지원을 받으면서 격퇴하기로 하였다. 북쪽의 산 베르난디노 해협은 매우 구불구불해서 침공하기 불리한 장소였긴 하나, 일단 배치상으로는 3함대가 방어할 영역에 해당했다. 그 당시 미군의 전력은 일본군의 전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특히 미군은 항공모함과 지상 기지로부터의 압도적인 항공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일본군은 그렇지 못했다. 원래라면 각각의 함대가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기만 해도 일본 해군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나, 명령·작전계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필리핀 탈환전]]은 독립적인 작전권을 가지고 각자의 해역에서 전투를 벌이던 태평양 전구의 2개 해역군. 니미츠 제독의 태평양해역군과 맥아더 장군의 남서태평양해역군이 합동 작전을 펼친 첫 대규모 전투였던 것이다.(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을 남서태평양해역군에 빌려 주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온전한 합동 작전은 아니었다.) 홀시 제독의 3함대는 태평양해역군 소속이었고 킨게이드 제독의 7함대는 남서태평양해역군 소속이었다. 작은 규모의 전투라면 두 해역군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인물을 야전사령관으로 임명하면 되나 필리핀 탈환전은 2개 해역군이 동원되는 규모의 대전투였다. 니미츠나 맥아더 중 한 사람이 전역을 총괄하게 되면 다른 쪽은 굴욕감을 느끼고 격분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상급자로서 워싱턴에 있는 합동참모회의 의원(윌리엄 리히, 조지 마셜, 어니스트 킹, 헨리 아놀드)을 사령관으로 모셔오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태평양해역군이 해군 중심이고 남서태평양해역군은 육군 중심이라는 이유도 작용했다. 그런 이유로 통합사령관 없이 독자적인 전투를 실행하게 되었다. 필리핀 탈환전의 명목상의 지휘관은 맥아더 장군이었지만 그의 지휘권은 남서태평양해역군에게만 해당되었고 태평양 함대에 대해서는 니미츠 제독을 통해 '협조 요청'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3함대와 7함대간의 비협조를 불러일으키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